시선을 디깅하다

당신이 일하기 싫은 이유는 X때문이다.

김소울 2023. 12. 23. 10:00

며칠 전에 ‘소울님은 일하기 싫을 때가 언제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소극적이고, 혼자서 일하는 느낌을 받을 때 일을 하기 싫어진다. 이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내리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해져서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능을 통해 지인들에게 일하기 싫은 상황을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놀랍게도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2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반복적인 생활이 지루하고 피곤하다’, ’ 성과를 내야 하니 부담스럽다’처럼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하기가 싫다는 응답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일은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해서’, ’같이 하는 사람이 일을 못 해서’처럼 외부 요인 때문에 일하기가 싫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답변을 받으니, 일하기 싫은 이유를 심리학적으로 알아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약>

사람들이 일하기 싫은 이유는
1. 일을 통해 돈만 정기적으로 들어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자세
2. 일을 통해 자율성 충족이 안 되는 상황
3. 일을 해도 인생은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세
4. 동료의 성격, 업무 성향이 지나치게 다른 상황
5. 자신의 실패, 문제를 동료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
의 콜라보로 보인다.

 

 


"일이란, 직업을 가지고 하는 활동이다."

우선, 논리를 펼치기에 앞서 본 글에서 말하는 일의 의미를 정해야 한다. 본 글은 ‘직업을 가지고 하는 활동’을 일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직업 활동은 즐거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단순 생계유지 수단일 수 있다. 이처럼 일을 돈 버는 수단으로만 바라보면, 일은 외재적 동기에 따른 행동이 된다.

 

일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일의 결과(쉽게 말해, 월급날에 통장이 든든한지)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다. 외재적 동기에 의해 일을 하는 사람은 상사가 시키는 일만 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외재적 동기로 일해도 본인이 행복하면 문제 되지 않는다. 이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질 차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만 해도 행복할 수 있을까?

 

김근향(2020)이 소개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살면서 가장 몰입도가 높은 활동은 일과 공부이다. 그러나 일에 몰입하려면 열정은 없더라도 최소한의 호감은 필요하다. 그래서 일하는 이유가 외재적 동기라면 열정은 부족할테고, 자연스럽게 몰입도가 떨어지고 일이 하기 싫어진다. 또한, 자기 결정 이론은 지금 일이 나의 자율성을 충족시켜주지 못해서 일이 싫은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3가지(유능성, 관계성, 자율성)이다.

 

1. 일을 통해 역량을 느낄 수 있는 유능성

2. 다른 사람과 친밀함을 느끼는 관계성

3.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는 자율성

 

특히 자율성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외재적 동기로 인한 일은 ‘싫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한다’는 마음이 생기는 반면,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은 부정적 정서보다 긍정적 정서를 더 많이 경험하게 해 주고, 내재적 동기(몰입, 헌신, 행복)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일이 나의 자율성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더 하기 싫은 것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내재적 동기가 고고익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재적 동기가 너무 강한 일이 하나 있으면 상대적으로 다른 일이 따분해지기 때문에 전체 성과는 떨어진다는 결과가 있다(박지영, 2019). 내재적 동기와 성과는 역 U자 곡선을 그리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라는 생각"

인간에게 일하기 싫은 마음은 먼 옛날부터 있었지만, 최근들어 일에 대한 관점이 많이 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에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한 번 회사에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그 회사에 충성을 다한다는 것이 흔한 인식이었다. 2023년 잡코리아가 직장인 496명을 대상으로 한 '하반기 이직 준비 현황'에 따르면, 10명 중 6명 이상(68.3%)이 다가오는 하반기에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지금은 회사가 나를 버리는 것보다 내가 회사를 버리는 게 더 빠른 세상이다.

 

이외에도 통계청의 2023 사회조사 결과, 본인 세대에서 개인의 사회 및 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6.4%로 2년 전보다 1.2%p 소폭 증가했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동향을 살펴보면, 본인 세대의 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2013년 31.2%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2015, 2017, 2019년까지 22.7%를 유지했다. 이후 2021년 25.2%부터 2023년 26.4%로 제일 낮은 수치(22.7%)에서는 증가한 모습이다.

 

2년 전인 2021년과 비교하면 노력으로 나의 지위가 바뀔 수 있다는 응답이 증가했다는 것은 꽤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 가능하다. 그러나 10년을 비교하면 여전히 노력으로 내 지위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일하기 싫다의 근원은 열심히 해도 나에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허무감과 맞닿아 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더불어, 돈이면 무엇이든 해결 가능하다는 믿음이 굳건해진 결과이다. 노력해도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으니까 일에 대한 열정을 놓아버린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참고로 통계청 사회조사는 10개 부문을 2년 주기로 5개씩 나눠서 조사하고 있다.

 

 


"동료 때문에 일하기가 싫은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한 인간으로서 일하기 싫은 이유에 대해 탐색했다면, 이제는 사회적 동물 인간으로서 일하기 싫은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만큼, 함께 일하는 동료가 정말 중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성격, 업무 스타일을 가진 동료와 일하고 있는가?

 

Rath & Harter(2010)에 따르면, 직장에서 가까운 친구를 만든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일에 더 몰입하고, 행복 수준도 높고, 더 생산적이었다. 물론 가까운 만큼 그 친구 때문에 직장에서 곤란한 상황도 생기기 마련이다. 당신은 친한 친구이자 동업자인 B가 업무에 방해를 준다면, 가감 없이 B에게 처벌을 가할 수 있는가? 나는 같이 일하는 친구 C가 마감 기한까지 (아무 소식 없이) 일을 안 하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내적 갈등을 심하게 겪곤 했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에 리더로서 결국 할 말은 해야 했다.

 

참고로 우리 팀의 약속은 '할 수 있는 만큼 책임감 있게 일하자. 마감 기한은 스스로가 정하고 스스로가 지키기'였다.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니 더욱 곤란한 상황이었기에 팀원 C의 소식을 기다리는 다른 팀원들에게 상황을 공유하면서 일을 처리했다. C에게 연락 없이 마감 기한을 지키지 못한 특별한 사유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고, C는 '나랑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D가 나랑 너무 대화를 안 해. 그래서 일하기 싫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C의 입장이 이해되지만, 그것이 팀의 약속을 깨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부터 팀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것을 기본값으로 하되, 지키지 못할 것 같다면 사전에 상황을 공유해주기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추가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팀원 D와의 원온원을 진행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업무 환경과 인간 관계의 중요성"

일을 하기 싫은 이유는 업무 환경 내에서의 인간 관계, 동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될 수 있다. 팀원 C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동료 간의 의사소통 부재나 상호작용의 부족은 업무 몰입도를 저하시키고, 결국 일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개인적인 업무 성향과 성격이 맞지 않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이와 관련하여, 팀 내에서 각자가 겪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 혹은 실패를 동료에게 돌리려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은 팀장 A가 나에게 나쁜 사람이면, 팀장 A는 다른 사람에게도 나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태연(2022)에 따르면, 대인관계는 나와 그 사람 사이의 관계라서 팀장 A는 나에게만 나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조금 불편한 이야기겠지만, 그는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닌데 나의 어떠한 말과 행동이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일하기 싫은 이유를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탐구해 보았다.

1. 개인적 차원(외재적-내재적 동기, 업무에 대한 자율성, 업무의 반복성과 스트레스)

2. 사회적 차원(동료와의 관계, 동료의 업무 성향, 대인관계에서의 오해와 진실)

 

이러한 요소들은 우리가 일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며, 일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생은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살아도 될 정도로 길지 않다. 이왕 하는 일이라면 즐겁고 의미 있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도 좋다. 일하기 싫은 마음은 단순히 게으름이나 무기력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일을 경험하고, 어떻게 일과 관련된 다양한 요구와 기대를 처리하는지에 대한 복잡한 반응이다. 따라서 일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을 재고하고, 일의 의미를 다시 찾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자신의 내재적 동기로 일할 수 있는,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발견하여 나의 열정을 태우는 것이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건강한 조직 문화를 조성하고 동료들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일하기 싫은 마음에서 벗어나려면, 일에 대한 관점을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방법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 문헌]

김근향 (2020.06.04). 일에 대한 새로운 시선: 워커필(workaphile). 내 삶의 심리학 mind.

http://www.min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60

김동길, 신용하, 이기동, 조한혜정, 진중권, 한명기, 권수영 (2016).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21세기북스

박성현 (2021.12.17). <살며 생각하며> 사라져 가는 ‘계층 이동 사다리’. 문화일보 오피니언.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121701033711000003

박지영 (2019.09.03). 너무 재미난 일, 그리고 찾아온 권태. 내 삶의 심리학 mind.

http://www.min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428

잡코리아 (2023.07.21). 직장인 68.3% '하반기 이직 준비한다'. 잡코리아 취업뉴스.

https://www.jobkorea.co.kr/GoodJob/Tip/View?News_No=21355

정태연 (2022).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의 심리학. 학지사.

정태연, 이장주, 박준성, 전경숙, 허성호, 김동수, 박은미, 손찬호, 전미연, 장민희, 안혜정 (2016). 사회심리학. 학지사.

통계청. (2023.11.08). 2023년 사회조사 결과 보도자료표 [데이터 세트]. 사회통계기획과.

Rath, T., & Harter, J. (2010). Your friends and your social wellbeing. Gallup Business Journal.